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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YMCA에 있으면서 동네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대중교통,자전거,보행권과 신재생에너지,기후변화,녹색창원21, 친환경 건축과 생태주거단지,투명사회,소비자문제,마을만들기등... 주민의 힘으로 더욱 살기좋은 동네를 만들고자 합니다. 전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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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에 지어진 교남YMCA(현 대구YMCA) 회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복원공사를 할 예정. 약전골목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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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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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훌륭한 얼굴 그림이 2개나 생겼다.

1. 내가 존경하는 건축가 정기용선생님의 유지를 잇는 추모전시회가 서울 북촌미술관에서 3.16~21까지 열렸다. 미처 가보지는 못했지만 3월 21일자 한겨레21에는 이 전시회에 흔쾌히 자기 작품을 보탠 30여명의 미술가들의 명단이 적혀있는데 김봉준선생님이 포함되어 있었다. 너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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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에 내가 가본 건축물 중에서 부산민주공원, 진해 기적의 도서관, 김해 봉화마을의 노무현 대통령 자택이 정기용선생님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서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지난해에 그의 평생역작인 무주 프로젝트를 둘러보고서는 현존하는 건축가중에서 가장 존경하게 되었다.

한편 김봉준선생님은 최근 활발한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요즘 씨름하는 화두와 작품활동을 알게 되었지만 오래전부터 그가 민중화가로써 시대적 영감을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그림들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내 하드에 별도의 방을 만들어서 다운로드 해놓고 있었다. 특히 요즘은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을 붓으로 그려서 님얼붓그림전이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하고 있어서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3월 중순에 평소 친하게 지내는 김용기교수와 함께 창원대학교 앞에 있는 해물촌에서 만났다. 소주를 마시면서 내가 퇴임하는 이야기, 김교수가 새로 시작하는 사회적 기업지원센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김봉준선생의 페이스북 활동과 님얼붓그림전이 너무 훌륭하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비로소 이날, 김교수와 김봉준선생님이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온 사이인지를 처음 알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뜻밖의 퇴임축하 그림을 받는 지경으로 발전하였다. 그로부터 20여일이 지난 오늘, 정기용선생님 추모전 기사에서 우연히 김봉준선생님의 이름을 발견한 것은 우연일까? 인연일까?


2. 창원에서 벽화, 만화활동을 하는 김영길선생은 대학생시절에 진주YMCA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청년이다. 일본에서 꽤 오랫동안 애니메이션공부를 하고서 왔는데 그가 그려준 얼굴그림을 페이스북 프로필에 올렸더니만 꽤 많은 분들이 실물보다 좋아보인다고 덕담을 해주었다.

직접 그려주신 두분과 중간역할을 잘 해주신 김교수님까지 포함해서 세분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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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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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N CORPORATION | NIKON D3100 | Not defined | Pattern | 1/160sec | F/5.6 | 0.00 EV | 55.0mm | ISO-3200 | Off Compulsory | 2011:03:22 18:10:05


하고 싶은 말을 미처 삼키지 못하고,  듣는 사람, 지루한 것도 모른 채하면서 3월 22일
퇴임식에서 꽤 길게 해버린 퇴임사. 나름대로는 30년을 돌아본다는 의미였는데....

 퇴   임   사

  오늘 퇴임식 순서가 너무 과분해서 무슨 말을 해야 될 지 당황스럽습니다. 3주전인 3월 1일부터 사무실에 출근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퇴임이 영 실감나지 않더니만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으니까 비로소 실감이 납니다. 며칠 쉬어보니까 정말 섭섭한 생각,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게 <회한(悔恨)>인 것 같습니다. 혼자 있을 때 눈물이 핑 돌더군요. 마산YMCA 이윤기 간사가 미국 가면서 자기 블로그에 올린 글을 어제 읽으면서는 정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물론 제 버릇 남 주겠습니까? 돝섬재생을 위한 남이섬방문, 마을만들기를 위하여 구청별로 순회방문교육등 요즈음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퇴임한다고 창원을 떠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YMCA 상근직을 그만 두는 것 일 뿐이고 새로운 시작입니다. 지역운동에 정년이 있습니까? 그러나 출퇴근하지 않는 게 묘한 기분을 들게 하드군요.

  성심성의껏 퇴임식을 준비해주는 후배들을 보면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말씀과  떠나는 사람은 조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오늘도 자기자리에서,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하여 묵묵히 애쓰시는 분들을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입니다. 특히 선배님들께, 후배가 폼만 잡고 오라가라 한 것 같아서 미안합니다. 조금전 동영상을 보니까 좋은 것만 있던데 너무 미화시켜 놓은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 제가 혼자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제가 특별히 큰 일을 한 것은 없지만 큰 흠 없이 30년을 지내게 된 것이 감사해서 이렇게 오시게 했습니다. 그래서 바쁘다는 핑계로 평소에 자주 인사드리지 못한 분들께 한꺼번에 인사드릴려고 합니다.

  국정, 도정, 시정으로 바쁘신 권경석 국회의원님, 강병기 부지사님, 박완수 시장님께서 함께 자리해주시고 축사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행정과의 관계에서는 밀고 당기면서, 찌지고 뽂으면서 어지간히 정이 든 것 같습니다.  축가순서를 배려해주신 민예총 김유철 회장님, 건축기금마련에 흔쾌히 노력해주신 창원상공회의소 최충경 회장님, 이수창 부회장님, 한국YMCA전국연맹 허정도 증경 이사장님과 경남애너지 이택수 부사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도의원, 시의원, 지역 시민단체, 청소년단체, 문화예술단체, 상공인, 출석교회 교우들, 공무원분들도 여러분 오셔서, 이 자리가 더 빛나는 것 같습니다. 한국YMCA전국연맹의 전현직 이학영, 남부원 사무총장님과 전국사무총장협의회 이상점 회장님, 전국간사회 김길구 회장님을 포함하여 전국에서 많은 선후배님들이 오시니 완전히 전국행사가 되었습니다.

  80년대 초반 부산YMCA가 운영한 근로청소년교실에서 자원봉사하던 당시의 대학생들, 청년Y 활동을 하면서 지도력을 키운 시민회 분들, 진주YMCA 대학Y 출신들이, 같이 늙어가면서도 모두 와서 더욱 반갑습니다. 창원YMCA 상담원들과 자원봉사자들, 경남지역 7개 YMCA가 그동안 저에게 주신 따뜻한 배려에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저의 퇴임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없는 살림>에도 우짜든지 잘 해 주실려고 애쓰신 창원YMCA 이사님들, 그동안 지혜도 보태주시고 시간과 돈도 후원해주신 덕분에 호강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2002년, 사무총장에 취임하면서 “지역을 섬길 수 있는 마지막 현장이라는 생각으로 일을 하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제 나름대로는 지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동안 저랑 호흡을 맞춘 차정인 현 이사장님과 9년 전에 진주에 있던 저를 창원으로 불러 주신 박양동 증경 이사장님, 회관건축을 위해 함께 동분서주하신 이승창, 김상규 증경 이사장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말로만 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생각하면 할수록 코 끝이 찡해오는 부산, 진주YMCA와 창원YMCA에서 나랑 함께 생활했던 모든 직원들도 고마워. 어떨 때는 밀린 월급 때문에 밤잠을 설친 적도 있었고 성질 때문에 잘해주지도 못한 것 같구먼. 함께 지낸 시간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70년대가 생각납니다. YMCA에 들어오기 전이었습니다. 체포, 구금, 수색, 고문, 징역, 협박, 공갈, 회유, 유혹, 억압등의 단어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던 암흑기, 희망보다 절망과 패배감이 많았던 시절을, 피끓는 20대로 지낸 것은 지금 생각해 보니 큰 다행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별로 훌륭한 사람도 아닌데 시대를 잘 타고나서 조금이나마 민주화에 역할을 할 수 있었고 험한 과정을 지내오면서 스스로를 단련시킬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후 80~90년대에는 오로지 YMCA를 통하여 시민운동을 해오면서 “불의는 용납하지 않으면서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문제, 원칙은 지키면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부드러운 직선”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해온 편입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도 뒤돌아보니 이런저런 일이 생각납니다. 잘한 일도 있고 잘못한 일도 있었습니다.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면서 교만할 때도 있었습니다.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확신이 부족해서 마음이 흔들리거나 겁날 때도 있었습니다.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해서 안타까울 때도 있었고 자신의 부족함을 느낄 때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운동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두가지 덕분인 것 같습니다. 하나는 유신시절에 보낸 20대의 청년, 전점석입니다. <지난 날의 꿈이 나를 밀어간다>라는 시집 제목처럼 20대의 생각과 경험이 중요했습니다. 또하나는 가족입니다. YMCA 30년은 결혼 30년입니다. 고맙게도 가족들이 모두 심각한 병으로 입원하거나 수술 받아 본 적도 없었고, 애들 둘이 모두가 속 썩이는 일도 없었고, 재수하지도 않고, 국립대학교에 진학하고, 대학졸업 후에 곧바로 취업도 했습니다. 제가 지역 일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일복도 많고,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나고, 돈도 필요한 만큼은 그때그때 마련되어 온 것 같습니다. 건축 모금할 때를 생각하면 정말 고마운 분들이 많습니다. 그동안 보여주신 과분한 격려와 협력에 감사드립니다. 범사에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와서 보니 평소에도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정말 저는 후배들을 잘 만난 것 같습니다. 제가 술을 많이 사지도 않았는데...... 제가 없는 자리에서 점박이 형님이라고 흉보는 후배들이 큰 힘입니다.

  하여튼 저는 인덕(人德)이 정말 많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곳이 두 군데인데 부산, 진주YMCA에서 오늘, 많이 오시고, 제가 처음으로 YMCA에 들어 올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고 평간사 시절에 사무총장으로 모셨던 임신영 선배님께서 오시고, 창원YMCA로 불러주셨던 박양동 이사장께서도 오셨으니 이 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퇴임한다는 게 소문이 나니까 후배들은 벌써 세월이 그렇게나 흘렀나라는 반응이었습니다. 자신들이 늙어간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는가 봅니다. 언론에서도 크게 관심을 가져줬는데 인터뷰를 하면서 정말 퇴임시기를 잘 정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섭섭할 때가 가장 적기인 것 같습니다. 밥 먹을 때도 조금 더 먹고 싶을 때, 숟가락을 놓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하지 않습니까.

  앞으로 뭘 할 것인지를 물으면서 이제껏 고생했으니 앞으로는 돈을 많이 벌라고 충고해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어디 송충이가 멀리 가겠습니까? 할 줄 아는 것도 몇 가지 안되는데.......  계속해서 솔잎을 먹을려고 합니다. 다만 방법적인 측면에서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 둘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겨레신문에 난 인터뷰 기사를 보고 대뜸 저에게 <우산(愚山)>이라는 호를 선물한 친구가 있어서 더더욱 달라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고마운 분들에게 진 빚을 갚는 길은 이제껏 살아온 방향으로 계속해서 더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창원YMCA 이사와 직원께는 부담을 드린 것 같아서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든든하게 생각합니다. 저도 계속해서 힘을 보태겠습니다. 오늘 오신 분들께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YMCA 운동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참여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1. 3. 22  전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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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2일에 있은 퇴임식에서 시낭송과 노래가사바꾸어 부른 순서가 많은 이들로부터 열띤 박수를 받았다.
노래는  녹색경남21의 이종훈, 서영옥, 녹색창원21의 박찬, 이명희, 홍은미, 신재경등 후배들이 불렀는데 가사는 이종훈
사무처장이 대중가요 '싫다 싫어'를 개사한 '앗싸 좋다'를 불렀다. 가사가 너무 멋있어서 소개한다.

 
1절>  YMCA아닌 단체도 얼마든지 많고 많은데 왜 하필 YMCA 선택해서 30년간 애를 태웠나

        노∼ 동 하는 예수 만나서 YMCA 운동 시작해 YMCA 매력에 빠진줄도 모르고 
        30년 한결같이 성 실 하 게 살았네  훗날다시 태어나도 YMCA 운동할테야 


2절>  당신아닌 다른 사람도 얼마든지 많고 많은데 어쩌다 YMCA 선택해서 지역사회 일꾼됐나요.

        앗∼ 싸 좋다 지난 30년 앗싸좋다 참된 30년  YMCA 운동에 빠진줄도 모르고 
        맨땅에 헤딩하기 특기가 되었네  지금와서 생각하니 모두가 잘한 일이야


<후렴> 앗싸 좋다 지난 30년 앗 싸  다 참된 30  YMCA 운동에 빠진줄도 모르고

          맨땅에 헤딩하기 특기가 되었네 지금와서 생각하니 모두가 잘한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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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낭송은 이명희 차장이 했는데 시 내용과 함께 읽는 이의 정성이 사람을 감동시켰다. 시는 민중시인 김효사가 지은 것인데 한겨레 신문에 난 퇴임 인터뷰기사를 보고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내한테 전화가 왔는데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중학교 동창이다. 난데없이 <우산>이라는 호를 선물하겠다고 하드니 시를 지어서 보내왔다. 자유롭고 혈기있게 살아가는 친구이다.

 무엇 때문에

         -우산(愚山) 전점석 선생 퇴임에 부쳐

무엇 때문에 그대

육십 평생을 오직 한 길-

그렇게 살았더란 말인가?

남들은 출세하고

유명해지고, 돈만 벌려고

발버둥치는데 

그대, 어찌하여

그렇게만 살았단 말이가?

우공(愚公)이 산을 옮기듯

오직 한길로 한길로만 살았던가!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 만들자고

참 자유와 평등의 세상 만들자고

거꾸로 된 세상 갈아 엎어 바로 세우자고

살아왔던 것 아니던가?

동족의 심장을 향해 겨누는

총부리 내려놓고

하나 되어 사는 세상

만들자고 살아 온 세월 아니었던가?

그래

그렇다! 그대 우산 선생이여, 우리는

어머니 뱃속에서 세상에 나올 때 이미 출세는 한 것이고

이름 지었을 때 이미 유명해진 것 아니던가!

사는 날까지 그대 아름다운 이름이여!

우공이 산을 옮기듯

그렇게,그렇게

살아 가자구나...


단기 4344년 3월 22일   金 曉 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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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CA 30년 활동을 뒤돌아보면서


유신시절인 1970년대 초의 대학생활은 현재까지 YMCA 실무자로서의 삶을 있게 해준 출발점이며 30여년을 꾸준히 계속할 수 있게 해준 에너지원입니다. 인하대학교 대학신문사 편집국장으로서의 활동, 기독학생회(KSCF)의 학생사회개발단 활동을 통하여 판자촌 생활체험, 동인천판유리회사에서의 노동체험, 브라이덴슈타인의 <인간화>, 하비콕스의 <세속도시>, 본훼퍼, 알린스키와의 만남은 큰 감동이었습니다.

 노동하는 예수와의 만남

 인천도시산업선교회를 통하여 조화순 목사님(낮추고 사는 즐거움, 도솔출판사 발간)과 동일방직 근로자를 만나고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대화출판사 발간)을 읽은 것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의 경험으로 인하여 저는 1976년, 대학 졸업 후의 삶에 대하여 새롭게 고민하게 되었으며 결국 한국신학대학 대학원 MD과정을 입학하였습니다. 이 당시에는 안병무, 서남동, 박형규 목사님을 통하여 역사적 예수, 민중교회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졌던 시기였습니다. 그후 학내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것이 빌미가 되어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영등포, 안양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하였습니다. 저는 짧은 징역생활을 통하여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저 낮은 곳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장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출소한 후에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선교교육원에서 1년간 공부를 하면서 문익환, 문동환, 이우정, 박현채, 송건호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으며 1979년에는 직접 현장 활동을 하기 위해서 영등포도시산업선교회의 연수를 거쳐서 구미도시산업선교회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79년의 10.26사건과 80년 5.18 광주민주화 운동 등으로 인하여 현장 활동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쉬면서 대구지역 KSCF 활동 참여, 공단지역 야학활동, 대구YMCA 성서연구모임 활동 등을 하고 있던 중에 선배님으로부터 YMCA활동에 대한 권유가 있었으며 공개합법운동기구로서의 큰 장점이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이루는 YMCA운동

 청년Y 담당간사로써 1981년 2월부터 부산YMCA에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청년Y시연맹, 전국연맹, 목적클럽과 취미클럽 등의 운동방향성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한 것이 기억납니다. 그 당시에는 붙잡혀 갈까봐 노래 <아침이슬>을 낮은 음성으로 부를 수밖에 없었던 암울한 시기였지만 사회개발부장, 청소년부장으로써 노동청년지도력 육성, 중등교육자협의회 등을 창립, 지원했습니다. 1986년 말 부산YMCA 사무총장 공백기에는 기획실장 직책을 맡아서 실무를 총괄하기도 하였습니다.

 1987년 7월부터는 진주YMCA에서 사무총장으로써의 역할을 처음으로 시작하였습니다. 1년 이상의 사무국장 공백기로 인하여 조직은 약화되어 있었지만 이사회와 자체회관이 있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서서히 회원확보, 재정안정, 사업개발 등을 진행하였습니다. 지역이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와 씨름하면서 비로소 진주의 지역운동이 시작되었으며 지방정부와의 관계에서는 참여와 감시를 통하여 YMCA의 위상을 확보하였습니다. 한편 대형약국 무자격자 의약품 판매실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추석맞이 갈비짝 선물세트를 받고서 깜짝 놀랐던 일이 생각납니다.

NIKON | E4300 | Normal program | Pattern | 1/6sec | F/2.8 | 0.00 EV | 8.0mm | ISO-100 | Off Compulsory | 2005:06:30 22:00:56

 15년의 진주생활을 정리하고서 2002년 1월에 창원YMCA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역시 조직내부의 갈등과 1년 이상 사무총장 공백이 가져온 심한 상처를 치료 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자체회관이 필요하다는 유지전문지도력의 판단으로 모금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당시 유행했던 말은 ‘맨땅에 헤딩하기’였습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모금과 건축설계과정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추진하였는데 다행히 많은 분들이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참여하여 자그마한 건물을 창원시 의창구 도계동에 2008년 12월에 준공하였습니다.

Canon | Canon EOS 350D DIGITAL | Manual | Pattern | 1/40sec | F/5.6 | 0.00 EV | 20.0mm | ISO-400 | Flash fired, compulsory flash mode | 2008:12:20 15:38:57

 지난 30년의 YMCA활동을 뒤돌아보면 우여곡절을 겪은 것이 오히려 내공을 길러주면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선배님과 YMCA 유지지도력의 격려와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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