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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않은 느림과 비움

78년 가리방 문집과 2010년대 SNS

78년 가리방 문집과 2010년대 SNS

전점석 명예총장(창원YMCA)


 요즘은 SNS가 유행이다. 너도나도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를 하고 있다. 새로운 사실을 가장 빨리 알 수도 있고, 내 생각을 올릴 수도 있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만날 수도 있고, 좋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한방에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도 있는 편리함으로 인하여 이용하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중앙일간지 신문에서는 오늘의 트위터라는 고정코너를 마련했다. 예를 들어 독설닷컴이 올린 “안철수 교수까지 좌파면 ... 좌파가 대세인거다. ㅋㅋ”, 이외수의 “가끔 생사람을 늑대로 오인해서 무자비하게 때려잡는 경우도 있지요. 아, 흥분하지 마세요. 자유당때 얘깁니다.”등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 통쾌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35년 전에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보가 유통되고 있었다. 물론 당시에도 신문, 방송, 인쇄소가 있었지만 돈 없이 누구나 손쉽게 사용하는 비제도 무비용 자작방식은 가리방이었다. 일본어인데 등사판(謄寫版)이라는 뜻이다. 대학교 동아리, 교회, 사찰의 대학부, 야간학교 뿐만 아니라 관공서, 학교에서도 공문과 시험지는 직접 가리방으로 만들었다. 필요한 부품이 몇가지 있는데 줄판, 철필, 등사원지, 등사용 잉크, 천이 달린 등사판, 롤러 등이다. 이 작업을 하다보면 손에도 잉크가 묻고 얼굴이나 옷에도 잉크를 묻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면장갑을 끼고 등사를 하였다. 줄판 위에 기름종이를 얹고 철필로 글씨를 쓰거나 타자기로 쳤다. 등사원지는 파라핀, 송진등을 섞어 만든 기름을 먹인 얇은 기름종이이다. 그래서 너무 힘을 주면 실컷 공들인 등사원지가 찢어져서 아예 못쓰게 된다. 타자기로 칠 경우에는 동그라미 부분이 항상 빵구가 나서 기름이 많이 묻었다. 그래서 적절한 요령이 필요하였다. 관공서, 학교에서는 펜글씨체로 잘 쓰시는 전문가가 있었다. 이 등사원지를 등사기의 얇은 천에 붙이고 그 위에서 기름 묻힌 롤러를 민다. 철필로 쓴 글씨로 잉크가 들어가서 아래에 놓아둔 종이에 프린트가 되는 방식이었다. 종이에 잉크가 퍼지기도 하고 종이와 종이가 붙어서 떨어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잉크가 많이 묻은 부분과 안묻은 부분이 있어서 제대로 글자를 알아보기도 쉽지 않았다.

 대학 시절에 유신헌법의 개헌을 요구하는 성명서는 어김없이 가리방으로 밀어서 몇 백장을 만들었다. 지난 해에 부산 대청동에 있는 민주공원 상설전시관에 갔더니 가리방 도구와 등사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안면있는 도구를 만나서 반가웠다.  


 나는 1978년, 서울 신촌과 금호동에 있는 교회에서 야간학교 자원봉사활동을 하였고 1979년에는 고향인 대구 원대동에서 운영중이었던 메아리야학에도 참여하였다. 이농을 부추기는 산업화정책에 의해 농촌에서는 더 이상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많은 청소년들이 학업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찾아서 도시로 올라왔다. 이들 근로청소년을 위한 곳이 야학이었다.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서 낯선 객지에서 외롭게 자취생활을 하면서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근로기준법은 있었지만 지키지 않는 공장이 훨씬 많았다. 근로청소년들은 그런 법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러나 아는 것이 힘이었다. 저임금, 장시간 근로에 지친 근로청소년들은 밤늦은 시간에 야학에 모여서 영어, 한문, 수학, 과학, 법률상식 등을 공부하였다. 10명의 교사들은 대부분 대학생이었다. 비슷비슷한 나이였다. 명절에 고향에 가지 못한 이들은 따로 모여서 회포를 풀기도 하였다. 6개월 과정이었는데 졸업식을 앞두고는 어김없이 문집을 만들었다. 물론 가리방으로 밀어서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지난 달에 딸애 한테서 전화 연락이 왔다. 우연히 대구에 있는 고문서 인터넷사이트에서 메아리야학 문집을 보았다는 것이다. 나는 무조건 경매를 하라고 말했다. 5만5천원에 경매되었다고 하였다. 며칠 후에 도착한 검은 표지의 문집은 가리방으로 등사된 생활 글모음이었다. 입학식을 한 날이 1978년 9월 21일 이라고 적혀있었다. 종이도 매끄럽지 않았다. 누르스럼하다. 잉크가 베어서 뒷면 글씨가 비치기도 하였지만 낯익은 이름을 만날 수 있어서 무척이나 행복하였다. 20대 시절에 밤늦게 동료들과 했던 일을 경매사이트에서 만났다는 게 신기하였다. 가리방으로 만들어진 문집을 통하여 20대의 청춘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떠오르는 얼굴들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