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있었던 이집트 민주화운동에서는 트위터, 페이스북이 큰 역할을 하였다. 80년대의 우리나라에서는 신문기사를 오려서 회지와 행사순서지에 붙인 다음 여러 장으로 복사해서 나누어 읽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서 학내의 대학생 동아리에서 만드는 회보와 회지 등에는 어김없이 신문기사, 만화, 만평 등을 오려붙였다. 교회 대학부, 청년부에서도 순서지, 회지 등을 만들 때는 자기들이 관심 있는 기사, 칼럼, 만화 등을 오려붙였다. 충격적인 내용의 신문기사 제목만을 겹겹이 오려 붙여서 활용하기도 하였다. 요즘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었다. 감춰진 진실에 대한 갈증이 만들어 낸 방식이었다. 김지하가 지은 <타는 목마름>이라는 제목의 시가 생각난다. 당시에는 언론검열이 심하였다. 신문, 방송사에서 권력의 횡포에 대한 내용을 보도하면 정보기관에서는 강제로 삭제하거나 담당기자를 체포하였다. 인권이 유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화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사실이 <~카더라> 통신을 타고 전국으로 전파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보니 어떤 것은 왜곡, 과장되는 것도 있었다. 권력자들은 이런 사소한 것을 트집 잡아서 유언비어라는 죄를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죄명으로 잡혀가는 사람들은 권력이 저지른 인권유린을 폭로하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용기 있는 기자에 의해 검열을 무릅쓰고 작성되는 기사가 있었다.
막강한 권력이 지배하던 시절에는 권력에 빌붙거나 눈에 그슬리지 않고 잘 지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지역 교회에서는 무엇이 감춰진 진실인지도 모르고 있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힘있는 교회어른일수록 자신들이 고생하면서 쌓아온 기득권을 잃어버릴까봐 몹시 걱정하였다. 신문기사를 오려 붙여서 복사하는 교회청년들을 철부지라고 나무라면서 못하게 하였다. 말려도 되지 않는 청년이 있으면 외부 불순분자에 오염되었다고 매도하기도 하였다. 교회 청년들이 이러한 비난과 오해를 감수하기에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몇몇 용기 있는 교회청년들은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고자 하였다. 기도할 때에는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였고 자신의 용기가 부족함을 고백하기도 하였다. 붙잡혀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감춰진 진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였다. 한번도 신문기사를 오려붙여 본 적이 없는 교회들은 어김없이 십자가보다는 은혜와 은총과 복주시는 하나님만을 찬양하였다. 자신이 무엇을 외면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고민이 없었다.
진실은 언론탄압만으로 감춰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마 이런 내용이 포함된 회지를 만드느라고 마음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다. 말리시는 친구 아버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과연 우리가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서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내온 20여년을 되돌아보면, 마치 최근의 이집트처럼 이들의 고민과 용기로 인하여 우리 사회는 몰라보게 좋아졌다. 지금은 모두들 50대가 되어서 지역사회의 버팀목이 되어 있을 것이다. 만약에 그 당시에 청년들의 행동을 어떤 이유에 의해서든 만류하신 분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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