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이 어렸을 때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 박물관에 간 적이 있다. 처음에는 재미없어 하지만 동기유발을 위한 노력과 함께 몇 번만 되풀이하면 신기해한다. 가장 재미있어하는 것은 집에서 본 물건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을 때이다. 어른이 보기에도 신기하다. 왜냐하면 집에 있을 때에는 하찮게 보였는데 그게 박물관에 전시할 만큼 가치가 있다는 게 놀라운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는 곧바로 다락을 뒤진다. 할머니가 사용하였던 물건을 찾아서 정성을 다해 반질반질하게 닦는다. 잘 보이는 곳에 놓고는 이리 보고 저리 보면서 아빠, 엄마에게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른다.
조금 다른 경우도 있다. 1920년에 할머니가 시집오실 때 가져오신 생활용품이 있었는데 귀한 줄 모르고 함부로 굴리다가 그만 잃어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같은 물건을 만났을 때에 얼마나 안타까울까. 특히 아빠는 귀한 것이니 잘 보관하라고 강조했는데도 불구하고 장난치다가 부셔버렸을 경우는 더더욱 신경질이 날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창원시 사림동에 최근 역사민속관이 문을 열었다. 지난 달 24일에 개관하였는데 며칠 지나서 가보았다. 평일인데도 자녀를 데리고 온 아줌마들을 만날 수 있었다. 평일에는 250~300명, 주말에는 400~500명이 찾는다고 한다. 특히 평일 오전에는 어린이, 학생들의 단체관람이 많은 모양이다. 인기가 굉장하다. 지상에서 3층까지 비스듬하게 녹화가 되어있고 갈지자로 데크로드가 설치되어 있는 것도 재미있다. 민속관 1층 입구로 들어갔다. 통합 창원시의 역사가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림과 사진을 섞어서 시대별로 잘 정리되어 있다. 근대시기에는 3장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마산 중앙동의 삼광청주공장이었다.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걷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반갑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였다.
내가 자주 오가면서 눈여겨보았던 삼광청주공장이 근대문화유산으로 공식적인 대접을 받는 것 같아서 반가웠다. 동시에 보존하자고 할 때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더니 철거되고 나서는 이렇게 전시까지 해놓은 것이 우스웠다. 만약 마산 중앙동의 주민들이 이 사진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매일 보던 건물이 박물관에 멋있게 전시되어 있다면 누구나 깜짝 놀랄 것이다. 역사책이나 지역홍보자료에서 볼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나쳤던 건물이 이렇게 역사적인 것인 줄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있을 때는 전혀 보존 노력을 안 한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될 것이다.
만약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라면 황당할 수도 있다. 자신이 주민들과 함께 보존을 위해 노력할 때는 지자체 공무원과 문화재 전문가들이 전혀 적극적인 관심을 갖지 않다가 이렇게 전시되어 것을 보면 무척이나 원망스러울 것이다. 결국은 아무런 대안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근대문화유산을 보존하자는 주민들의 희망은 외면당하였고 철거 가림막에 가리워진 건물이 어느 날 순식간에 부서진 게 생각날 것이다. 모처럼 보존운동에 나섰던 주민들은 큰 상처를 입었던 것이다.
크든 작든 자기 동네의 역사는 소중하다. 어릴 때 멱을 감던 우물터, 잠자리를 잡으면서 물장난하던 도랑, 해안도로변에 방치되어 있는 사일로, 지금은 빌딩에 가려져 초라해진 일제 강점기 건물은 동네의 살아있는 역사로 존중받아야 한다. 흔히,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은 부지런히 돈을 버느라고 앞만 보고 사는 분들 중에서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왜냐하면 이제 살만하다고 생각하고 옆을 돌아보니 아무도 없는 것이다. 애들은 다 컷고 부모님은 돌아가신 후였다. 가족에게 평소에 잘해야 하듯이 근대문화유산에 대해서도 있을 때 잘해야 한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러 가지 생활용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우리집에 있는 물건을 발견하고는 무척이나 반가웠다. 이 날은 1층과 2층에서 각각 일희일비를 느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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