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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할 근대문화유산

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제황산 공원



 200만 명의 관광객이 모여든 진해 군항제가 중원로타리 주변에서 열렸다. 음식점을 포함한 여러 가지 난전이 로타리 주변의 8거리를 점령했다. 다행히 1955년부터 문을 연 흑백다방에서는 류택렬 화백의 작품전시회, 문화의 거리에서는 진해근대문화유산 사진전시회가 열려서 많은 시민들이 재미있게 둘러 볼 수 있었다. 마지막 날에 로터리 옆에 있는 제황산 공원에 올라가 보았다.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방공호, 통신부대 막사와 벙커 그리고 1967년에 세워진 진해탑을 보기위해서였다.

 진해 제황산은 흔히 탑산공원이라고 부른다. 몇 년 전에 설치한 모노레일을 이용하지 않고 365계단으로 올라갔다. 헉헉거리면서 힘들게 올라갔는데 반갑게 맞이하는 진해탑은 설렁하였다. 정식으로 박물관 등록도 하지 않은 채 이름만 박물관으로 불리우는 역사전시시설이 1, 2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 보았다. 전망탑이라고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거의 임자없는 건물처럼 방치되어 있었다. 진해의 랜드마크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진해탑은 즐거운 마음으로 탑산을 찾아오는 관광객을 실망시키고 있었다.

 제황산은 진해의 구 중심시가지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으며 일제시대에는 전략적인 군사시설이 있는 곳이었다. 주택지와 가까운 산 아래에는 바위를 뚫어서 만든 방공호가 있고 산 정상에는 통신부대 막사와 벙커가 지금도 제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러일전쟁의 승리를 기념하여 세운 전승탑은 해방 후에 철거되고 그 자리에는 우리나라 해군의 군함을 상징하는 진해탑이 세워져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허술한 모습의 진해탑을 보면서 우여곡절을 겪은 진해의 역사가 외면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전한 생각으로 탑 입구를 나서니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아마 최근에 세워놓은 것 같다. 자세히 살펴보니 제황산 근린공원 조성계획 조감도였다.

 정상 주위를 운행하는 모노레일을 추가로 설치하고 통신부대 벙커 위에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지상 1층 규모의 카페테리아를 지을 예정이다. 시내 어디에서든 잘 보이는 진해탑을 철거하고 대신에 철근 콘크리트 구조와 철골외장으로 진해타워를 설치하는 그림이 예쁘게 그려져 있었다. 진해탑이 진해타워로 바뀌는 셈이다. 그렇다면 명칭도 탑산공원이 아니라 타워공원이라고 불러야할 지 모른다. 조감도는 산 정상 두 군데에 세워져 있는데 아마 본격적인 공사를 앞두고 시민에게 알리기 위해서 세워 놓은 것 같았다. 그러나 제황산 정상을 찾아오는 시민이 거의 없기 때문에 홍보효과도 없다. 물론 계획수립과정에서 시민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내가 만나 본 진해분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때부터 진해에 관한 역사공부를 하기 위해서 진해탑 1층에 있는 박물관을 몇 차례 드나들면서 향토사에 관한 책을 빌렸다. 향토사학자도 만나고 문화예술인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들 진해탑을 없애서는 안된다는 의견이었다. 오히려 더 신경써서 아름답게 가꾸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창원시에서는 근린공원 조성계획에 의해 벌써 1단계 사업을 완료한 상태였다. 전체 5단계로 나누어서 단계별로 진행하고 있었다. 답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자물쇠로 채워져 있는 방공호와 통신부대 벙커를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방공호 열쇠는 중앙동사무소가 보관하고 있고 벙커 열쇠는 시청 공원사업소에 보관하고 있다고 하였다. 알고 보니 제황산에 관한 행정적 역할분담이 간단하지 않았다.

 제황산 전체는 공원사업소가 담당하고 있는 반면 모노레일과 진해탑 건물관리는 시설관리공단 소관이고 박물관 업무는 진해구청 문화위생과 소관사항이었다. 진해탑의 철거여부를 확인하니 부서별로 알고 있는 내용이 달랐다. 철거될 것으로만 알고 있는 부서도 있고 최소한 5월에 시작한 2단계 사업에는 철거계획이 없다고 대답하는 부서도 있었다. 공원사업소의 제황산 담당공무원이 진해 출신이 아니어서인지 시민 정서가 어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다. 단지 전임자가 세워 놓은 조성계획을 의회가 승인하는 예산 범위 안에서 집행할 뿐이었다.


(타당성이 없다고 결론이 난 용역보고서의 그림입니다.)

 지금이라도 전체 계획에 대한 공청회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박물관만 하더라도 제황산 정상에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접근성이 좋은 위치로 옮겨야 한다. 가파른 경사면을 숨가쁘게 오르는 자그마한 모노레일이 있긴 하지만 거의 이용하는 사람이 없다. 유일한 차량 진입로는 외곽을 빙 둘러서 주택가 내부의 1차선 좁은 도로를 지나는 불편함 때문에 아무리 돈을 들여 정상을 화려하게 해놓아도 아무런 쓸모가 없을 정도이다. 담당업무의 성격이 달라서 시청의 여러 부서로 나누어져 있을 수는 있다. 다만 훌륭한 종합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모든 유관 부서가 힘을 합치고 시민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서 제황산을 진해의 보물로 가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