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없는 세상에 염치없는 사람들
전점석 사무총장(창원YMCA)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해보면 같은 걸 보고서도 서로 다른 말을 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가끔은 왜 생각이 서로 다른 지를 쉽게 이해할 때도 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아도 이해 조차 안되는 경우가 있다.
며칠 전 서울 덕수궁 앞에 차려진 자그마한 분향소를 둘러싸고 있는 경찰차를 신문에서 보았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이야기하면서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높은 지위에 있는 어떤 분은 오히려 아늑한 분위기가 조성되어서 훨씬 좋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는 명분이 궁색해서 그냥 해보는 말장난이라고 쉽게 이해가 된다. 서울 광장을 경찰차로 포위해놓고 절대 출입을 못하게 하고 영결식 날에 광화문의 넓은 도로에 명박산성을 설치한 것도 몹시 불안해서 그러는 것이니까 쉽게 이해할 수는 있다.
평범하게 살겠다는 사람을 궁지에 몰아 부친 사람이 먼저 사과하는 것이 순서이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만약 자신이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면 공식적으로 국회에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잘잘못을 따져보면 된다. 그러고 나서 화해와 통합을 이야기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공개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 공개사과야말로 진정한 화해와 통합을 위한 진지한 자세이다. 요즘 사회 분위기에는 졸탁이라는 단어가 여러 가지 교훈을 준다. 안과 밖에서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다. 시인 이산하의 <부화>라는 시가 있다. “알 속에서는 새끼가 껍질을 깨고 알 밖에서는 어미새가 껍질을 쫀다. 생명은 그렇게 안팎으로 쪼아야 죽음도 두렵지 않다.” 안과 밖이 만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화합이다. 서로 화해하기 위한 안팎의 노력이 있어야 죽음을 넘어설 수 있다. 무조건적인 화해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지금이라도 염치가 있기 위해 올바른 처신을 해야 한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아파하고 있는데 사과하는 사람도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