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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큐슈에서 배운다

마찌야(町家)와 경관보존을 위한 교토시의 노력(1/7) 마찌야(町家)와 경관보존을 위한 교토시의 노력(1/7) 전 점 석 목 차 1. 전통도시주택 마찌야의 건축적 특징 2. 의 중심적 역할 3. 교토시의 내진진단사와 경관중요건조물 시니세 지정제도 4. 주민들의 자발적이며 자구적인 노력 5. 면(面)적인 보존을 위한 시가지경관조례 6. 경관자산등록제도와 건축협정제도 관광객에게 도시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부각시키기에는 경관이 가장 중요하다. 지난 2008년 11월 교토 시내를 다니면서 겉으로 보기에도 놀라운 것은 오래된 집과 가로를 잘 보존하고 있는 점이었다. 교토에 비해서 우리나라의 서울, 경주, 전주는 왜 그렇지 않은지가 궁금하였다. 어디를 가나 무분별한 재개발, 재건축 붐이 일어나고 있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모든 사람들이 오래된 한옥을 부수고 아파트를 새로 .. 더보기
환경수도 키타큐슈의 시민행동 10원칙 이번 방문에서 재미있는 것은 키타큐슈 역시 창원시처럼 환경수도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키타큐슈시가 2007년 7월에 발간한 에 의하면 전국환경NGO네트워크가 주최한 제6회 일본 환경수도 컨테스트에서 15개 분야 중 7개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함으로써 종합 1위가 되었다. 키타큐슈시에서는 시민, NPO, 기업, 대학, 행정이 참가하는 키타큐슈환경수도창조회의를 구성하고 수차례의 회의와 환경수도 창조포럼과 심포지움을 통하여 여론을 수렴한 다음, 세계의 환경수도가 되기 위한 기본이념을 수립하였으며 시민환경행동 10원칙을 발표하였다. 키타큐슈 시청의 환경국에는 환경경제부, 환경산업정책실, 환경국제협력실 그리고 환경정책부 환경수도추진실 등의 부서가 있다. 그 외에 민관이 참여하는 지속가능 교육을 위한 키타큐슈ESD협의.. 더보기
키타큐슈의 환경전시관 전시실에는 환경에 관한 다양한 내용을 종합적으로 전시해놓았는데 몇가지 특징이 있었다. 첫째 엄청난 공해를 극복한 키타큐슈의 역사가 자세히 정리되어 있었다. 특히 죽음의 바다와 7색의 매연에 관한 사진은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이 끔찍한 상황을 극복한 시민의 노력이 놀라웠다. 1901년 본격적인 근대식 용광로를 가진 국영 야하타제철소가 조업을 시작한 키타큐슈로부터 일본의 근대산업이 시작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의 심각한 산업공해를 겪으면서 69년부터 도카이만은 대장균조차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라고 불리었으며 하늘은 라고 불릴 정도로 일본에서 가장 심한 매연도시였던 것이다. 둘째, 각종 시청각 자료가 상영되고 있었는데 는 제목의 비디오는 키타큐슈의 과거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자료였다. 이 기록영화는 토.. 더보기
인공해변 모모치와 환경전시관 천만궁을 재빨리 둘러 보고나서 도심 속의 복합쇼핑몰인 캐널시티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이어서 매립지에 만들어진 인공해변인 씨사이드 모모치에 갔다. 후쿠오카타워 옆에 있는데 언뜻 보기에는 인공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매립이 연안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하였다. 해변의 가운데에는 바다쪽으로 돌출하여 마리존이라는 리조트 시설이 있는데 이곳 레스토랑에서 바라보는 바다풍경이 멋있었다.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 입구에 있는 기념품 가게 등을 보고 키타큐슈로 이동하였다. 이제 마지막 견학코스로 환경전시관을 둘러보았다. 환경교육의 종합거점시설인 이 건물 주변에는 여러 개의 작은 표시판이 땅에 나지막히 세워져 있었다. 태양광 가로등, 재생블록 등에 관한 내용이었다. 우수를 지하에 저장하기 위해 투수성이 높은 포장.. 더보기
재미있는 물 자판기의 등장 다음 날인 28일,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치고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우리가 버스를 타고 출발할 때 여관에서 일하시는 할머니들이 문앞에 공손히 서서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었다. 후쿠오카에 도착해서는 먼저 여객선 터미널로 갔다. 왜냐하면 창원대학교 배성근교수가 먼저 귀국해야 될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배웅하다가 보니까 신한은행 간판이 보였다. 나는 출국할 때에 미처 환전을 못했었다. 내가 불편할까봐 이종훈사무처장이 첫째 날 저녁에 5,000엔을 빌려줘서 그동안 잘 쓰고 있었다. 은행 간판은 보았지만 일요일이어서 안할까봐 걱정했는데 찾아가보니까 정상업무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 날이긴 하지만 필요할 것 같아서 40만원을 엔화로 환전하였다. 우리들은 태재부로 가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