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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할 근대문화유산

무너져 내리는 마산의 삼광청주공장

전국적인 도심재생 성공사례를 살펴보면 재래시장 활성화가 아케이드 설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문화와 만나면서 이루어졌다. 원도심 활성화 역시 도로 개설과 재건축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역사, 문화콘텐츠를 접목함으로써 성공하였다. 몇 개월 전 마산 중앙동 주민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청주공장과 주택을 보존, 활용함으로써 역사가 있는 동네를 가꾸기로 하였다. 굉장히 반가운 일이었다. 우선 자그마한 동네박물관(?)부터 시작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외지인에게 팔렸다는 소식이 들렸으며 일백 년가량 된 건물을 헐고 원룸을 지을 것이라고 하였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현장으로 달려갔다. 짧게 보는 사람에게는 허름한 창고에 불과하지만 길게 보는 사람에게는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동안 별생각 없이 지나다니던 동네주민은 청주공장이 지닌 역사, 문화적 의미를 깨달으면서 쇠퇴해진 중앙동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기 시작하였다.

 (경남도민일보에 게재되었던 전경 스케치 그림)

지역언론에 크게 보도됨으로써 행정에서도 관심을 두게 되었다. 주민으로 구성된 마을 만들기추진위원회의 작은 사업이 이제 창원시가 검토해야 할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었다. 바람직한 진행과정이었다. 그런데 한동안은 어느 부서 업무인지를 정하느라고 탁구공 신세였다가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할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문화재 위원들이 현장을 둘러보고 의견서를 제출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전후 과정을 제대로 모르는 채로 문화재 지정에 대해서만 검토하였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안내한 공무원들이 몰랐던 것이다.

 꽤 넓은 크기의 삼광청주공장은 사장 사택이었던 2층 전통가옥과 크고 작은 공장, 창고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러 필지로 나누어져 있어서 매도자도 여러 명이었고 매수자도 여러 명이었다. 그리고 모두 팔린 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사정을 알아야 올바른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 공무원들은 우선 당장 50억원이 필요하다는 걱정 때문에 고개부터 갸우뚱하느라고 자세하게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부산에 사신다는 새 소유주는 길쭉한 필지를 세 개로 분할할 예정이어서 그중에 가장 보존상태가 양호한 사장사택만이라도 분할 구입이 가능하였다. 그런데 팔리지도 않은 건물까지 포함해서 전체를 창원시가 사들이는 문제에만 얽매여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성의있게 찾지 못한 것이다. 뒤늦게 주민과 대책회의를 할 때에도 시청 공무원은 이 일을 처음 시작한 부서에 대해서 따지는 듯한 발언을 하여 분위기를 해치기도 하였고 또 다른 분은 지역신문의 보도자세를 언급한 적이 있었다. 중요한 문제일수록 비본질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삼광청주공장은 보존가치와 활용방안이 본질적인 문제임에도 오히려 누구에게 득이 될 것인가, 나서고 있는 사람 중에 이용하려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많았다고 한다. 불과 며칠전에 창원시는 컨벤션홀에서 세계지식컨퍼런스를 주최하였다. 대만의 도시계획학회장은 타이페이의 성공적인 역사거리 보존을 발표하였는데 근대문화유산의 중요성을 깨닫는 좋은 발표였다. 당연히 삼광청주공장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회였지만 오히려 현실은 전혀 딴판이었다. 무성의한 자세로 일관하는 동안에 아쉽게도 이제 대구, 부산 등지의 건축업자에게 팔린 부분은 완전히 철거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아직까지도 팔리지 않은 부분은 그대로 있다. 인천과 일본 키타큐슈 모지코(門司港)의 허름한 창고건물이 지금은 지역 활성화에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군산은 근대문화시설계라는 부서까지 만들 정도로 적극적이다. 

이번 삼광청주공장 사례에서 주민참여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과 창원시에 문화정책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헐리는 건물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동네주민은 무너져 내리는 자기 가슴을 달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