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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좋은 마을만들기

마을이 아이를 키우는게 확실하다

마을이 아이를 키우는게 확실하다
2014년 03월 14일 00시 00분 입력
서른 살, 딸내미 결혼식장에서 있었던 25년 전으로의 시간여행이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결혼식의 모든 순서와 준비를 스스로 했기 때문에 부모, 특히 아버지가 할 일은 별로 없었다. 주례선생님도 신랑·신부가 의논해서 결정하였다. 나는 단지 시댁의 의견을 존중하는 준비과정이어야 함을 강조하는 역할만 하였다. 예단으로 준비한 옷도 애초부터 직계가족만 하기로 했기 때문에 나와 아들만 양복을 구입하였고 아내의 한복은 빌려 입기로 하였다. 사돈과의 상견례에서 원칙을 정한 다음에 미리 양해를 구하긴 했으나 어릴 때부터 정을 많이 준 고모·이모들에게 미안하였다. 어릴 때는 업어주기도 하였고, 명절 때마다 용돈도 주고, 상급학교로 진학할 때마다 축하와 격려를 아끼지 않은 친척이 절반 이상을 키워준 것이다. 삼촌·외삼촌에게도 미안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양해를 구하였다. 살림집을 보러 다니지도 않았고 물건을 사러 다니지도 않았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전세보증금을 신랑·신부가 절반씩 부담키로 하였고 가전제품, 가재도구는 평소에 각자가 사용하던 것을 합하기로 하였다. 스스로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편 발송과 전화 연락에만 신경 쓰고 있다가 행사를 불과 이틀 앞두고 갑자기 어릴 때의 담임선생이 궁금해졌다. 문자메시지로 초등학교 입학 전에 3년간 다녔던 진주YMCA 아기스포츠단 담임선생님이 누구인지를 알아보았다. 이미 딸애의 결혼소식을 알고 있던 선생님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당시에 주임선생이었던 분의 기억이 정확하였다. 당연히 코 흘리던 시절의 이야기가 나왔다. 고집이 있었다는 둥, 성격이 활발하였다는 등이었다. 세 명의 담임선생님 중에서 두 명이 결혼식장에 왔다. 25년의 세월을 확인하면서도 자신들이 늙어 있음을 인정하기 싫은 눈치였다. 초등학교 때 다녔던 진주제일교회 주일학교 선생님에게도 미리 참석여부를 확인하였다. 처음에는 엄마·아빠와 다니는 재미만 있었는데 주일학교 선생님들의 칭찬을 들으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생명과 사랑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동생들로부터 왕언니라고 불렸던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어릴 때 살았던 이현아파트의 친구들도 참석하였다. 1987년부터 15년간 살았던 곳이다. 딸애는 이곳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아파트는 5층이었는데 같은 출입구를 사용하는 10가구는 몇 년 동안 월례회를 가졌다. 이집 저집 옮겨다니면서 놀았다. 비슷한 또래의 엄마들끼리도 친해졌고 애들도 친하게 지냈다. 싸우기도 하고, 숙제를 하기도 하고, 길 건너편에 있는 초등학교 등하교를 같이하기도 하였다. 이들이 엄마와 함께 결혼식장에 왔다. 결혼한 녀석은 마누라와 함께 왔다. 20여년간 만나지 않은 사이였지만 첫눈에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 당시에 아파트 입구에는 약국이 있었다. 주민들의 건강을 따뜻하게 돌봐주는 곳이었다. 한번은 피곤해서 찾아갔더니 약은 주지 않고 목욕하고 집에서 쉬라고 하여서 이상한 약사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집 4명의 가족은 모두 이 약국을 드나들었다. 일종의 가정의, 주치의였던 셈이다. 자연스럽게 두집의 가족들끼리도 친해졌다. 애들이 건강하게 자란 것은 이분들이 많은 사랑을 주신 덕분이다.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딸애는 졸업 후에 농촌 청소년 활동을 하고 싶다면서 거창군으로 갔다. 엄마는 도시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에 농촌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딸애는 도시에서의 복지활동은 더 이상 필요없다면서 곧바로 갔다. 거창에 있는 청소년단체, 시민단체 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 중에는 평소부터 친하게 지내던 분들이 있었다. 만날 때마다 귀한 청년이 거창에 왔다고 칭찬을 하였다. 그때마다 나는 많이 격려해 주셔서 고맙다고 하면서 거창군으로 시집보냈으니 앞으로의 인생은 거창군이 책임지라는 농담을 하곤 했다. 이분들의 격려와 칭찬이 있었기에 한쌍의 가정이 꾸려졌다. 직접 창원에까지 와서 신랑·신부가 예쁘다는 이야기도 보태어 주었다. 아무리 사교육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다 해도 역시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게 사실임을 알았다. 축하받는 것도 기쁜 일이고 축하하는 것도 기쁜 일이다.

전점석 (창원 YMCA 명예총장)

경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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