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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인물

우상에 도전하신 리영희선생님

우상에 도전하신 리영희선생님

전 점석 사무총장(창원YMCA)


 어릴 때, 교회학교를 다니면서 십계명을 배웠는데 제2계명이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성당 마당에 세워져 있는 마리아상이나 대웅전에 가부좌로 앉아 있는 부처상에 대하여 우상이라는 나쁜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타종교를 배척하는 속 좁은 생각이었다. 심지어 극단적인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이들은 초등학교 운동장에 교육 차원에서 세워놓은 단군상을 망치로 부숴버리는 몰지각한 사고를 저지러기도 한다.

 지난 5일 리영희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 우상숭배였다. 내 책꽂이를 둘러보니 최근에 구입한 선생님에 관한 책이 3권 있었다. 책제목을 소개하면 임헌영선생과의 대화, 한국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 살아있는 신화 리영희등이다. 20대의 대학생 시절에 열심히 읽었던 선생님께서 쓰신 3권의 책이 있었는데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학생들에게는 필독서였고 박정희정권에게는 금서목록 1호였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친구로부터 빌려서 보고 돌려서 보았다. 그런데 책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경찰서에 붙잡혀 가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책상정리를 할 때면 어김없이 없애버리기도 하였다. 아마 그런 연유로 내 책꽂이에서 사라진 것 같다. 영구집권을 위하여 유신헌법을 제정한 박정희정권의 군부독재가 반공, 친미노선으로 자신의 기반을 굳건히 하고 있던 1974년에 선생님은 <전환시대의 논리>를 펴내셨다. 이어서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등이 나왔다. 나는 사회주의 중국의 실상이 무엇인지, 베트남전쟁의 진실이 무엇인지등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독재권력이 홍보하듯이 미국이 우리의 영원한 친구이고 세계의 평화를 지켜주는 파수꾼인지에 대해서도 눈을 뜨게 되었다. 한마디로 권력에 의해 감추어져있던 진실에 대해서 비로소 알게 된 것이었다. 선생님은 이 3권의 책 때문에 박정희 정권에 의해 반공법으로 기소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셨으며, 그 책을 읽은 나는 마음으로부터 존경하는 사람을 가진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같은 책 때문에 한 사람은 고생을 하였고 또 한사람은 행복하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많은 빚을 진 셈이다.

선생님에 관한 책을 보면 유독 우상이라는 단어가 많이 눈에 띈다. 목차에 나타난 몇가지를 소개하면 반공, 전쟁, 국가주의의 우상, 영어라는 우상, 남북한 전쟁능력 비교연구로 또 하나의 우상을 깨다, 냉철한 이성으로 우상의 심장을 쏘다, 평생을 우상 타파에 바친 이성의 파수꾼, 우상의 칼에 맞선 이성의 펜, 사상적 일관성이라는 우상, 냉전이데올로기의 우상에 맞선 이성의 필봉등이 보인다.

흔히 사람들은 선생님을 가리켜서 우상이 지배하던 시대에 이성의 힘으로 맞서 싸우신 분이라고 부른다. 나는 선생님께서 쓰신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반공주의가 나의 우상이었음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기독교인인 나로써는 우상숭배를 하지 말아야하기 때문이다. 냉전이데올로기 안에서 편안히 잠을 자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도 선생님의 책을 읽고 난뒤이다. 아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상의 가장 큰 특징은 이성과 자유를 억압하는 것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선생님은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고 말씀하셨다. 혼자서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선생님의 글을 읽어면서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음에 만족하기만 했지 고통을 감수하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한 것 같아서 죄송스런 마음이 든다. 내가 생각하기에 2010년, 지금의 우상은 개발지상주의라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개발지상주의라는 우상을 숭배하며 편안히 잠을 자고 있는 우리들을 일깨우시며 진실을 밝혀주실 선생님께서 이제는 우리 옆에 계시지 않는다. 그리워하면서 동시에 선생님에게 많은 빚을 진 우리들이 맡아야 할 몫이다. 고은 선생님은 그의 조시에서 “시대가 그 진실을 모독하는 허위일 때, 또 시대가 그 진실을 가로막는 장벽일 때, 그 장벽 기어이 무너뜨릴 진실을 맨 앞으로 외쳐댄 사람”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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